Click titles to listen or download
6-19-2022. 누가복음 비유 성경공부. 17.7-10. 17-1부
누가복음 공부 – 17-1부 (누가복음 17:7-10)
누가복음 17:7-10 (순종하는 종/노예)
1.일반적이고 문화적인 배경 이해
1) 누가복음 12장 35-38절의 비유에서 우리가 이미 알아 본 사실이 있다: 결혼 연회에 참석한 주인이 밤 늦게 돌아 오기를 깨어서 기다리던 자신의 노예들을 돌아 온 주인이 자리에 앉히고, 그들에게 식사 대접하려 준비하던 것이다. 그러한 주인의 섬기는 행동은 예수님의 비유를 듣던 청중들에게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2) 따라서 유대인의 사회에서는 주인이 자신의 노예들을 섬긴다는 개념은 전혀 들어 볼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복음 12장 35-38절의 비유에서 예수님께서는 장차 오실 메시야의 나라가 완성될 때에 실제로 일어 날 모습을 설명하신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잡히시던 날 늦은 오후 식사시간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사도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노예의 모습을 몸소 행하셨다 (요한복음 13:3-5). 예수님께서는 이미 자신의 사도들 가운데 계시면서 그들을 섬기시는 주인이셨던 것이다 (참조, 누가복음 22:27).
3) 누가복음 17장 1-6에서 이미 우리는 예수님의 이 비유 (17:7-10)를 듣는 대상이 그분의 제자들 임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구약시대나 예수님 당시에 일반적인 유대인의 가정에서 단 한 명의 노예나 종이 여러 가지의 일들을 담당하는 일이 빈번했고, 자연스러운 상황이었다. 당연히 그 노예들이나 종들은 자신들의 주인(들)에게 충성과 순종을 하여야만 했고, 그런 상황이나 관계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
4) 주인과 노예(종)의 관계란 예나 오늘날이나, 중근동 지방에서는 여전히 주인의 권위를 받아 들이고, 그 권위에 전적으로 순종한다는 관계이다. 21세기를 사는 나머지 지역에 사는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이 있다. 즉 중근동의 사회에 현존하는 예수님 당시의 사회 모습들 중에, 전형적인 주인과 노예 (종)의 관계의 저변에 깔린 사상이다. 이 사상은 그 노예가 그의 존경을 받는 주인에게 바치는 충성과 순종이 자신에게는 스스로 존재하는 삶의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기인한다는 점이다. 오늘날 주 사십 여 시간을 노동하며 주간 생활을 유지하는 산업화된 사회의 일반 직장인들의 경우에는, 이러한 관계에 얽힌 사실들을 제대로 소화하기가 어려운 부분이라 하겠다.
5) 노예/종이 주인에게 충성과 순종과 온전한 노동을 바치긴 하지만, 반면에 중근동에서 오늘날 까지도 일반적으로 많이 존재하는 인격적인 주인은4)에서 밝힌 어마 어마한 혜택들을 노예/종(들)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의 주고 받는 상황은 우리가 하나님과 그분의 유일하신 대리인이시요,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가져야 할 관계를 잘 묘사하기에 충분한 주인과 노예와의 관계에 대한 상황이기도 하다. 주인은 자신의 노예가 밭일을 하거나, 양떼를 치고 돌아 왔다고 해서 그에게 빚을 진 것이 전혀 아니다. 상대적으로 짧은 하루의 의무를 다 하고 돌아 온 노예에게 “저녁을 준비하라”고 말한 것은, 늦은 오후 즉 3시 즈음의 식사를 준비하라는 뜻이다 (17:8의 동사). 오늘날의 우리에게 익숙한 저녁 6,7, 혹은 8시에 하는 늦은 저녁식사 준비를 뜻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비유에서 주인은 상대적으로 짧은 노동시간을 가지도록 노예를 다룬 사람이기에, 잔혹하고 노예를 학대할 정도의 오랜 시간의 노동을 그에게 강요하는 부류의 사람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그 당시의 노예가 평소에 감당하는 비교적 짧은 노동시간을 뜻한다.
6)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비유에서 우리가 주의 깊게 여길 부분은, “주인이 과연 노예에게 곧바로 음식과 휴식을 제대로 제공할 것인가?”가 아니라, 되려, “당연히 감당해야 할 의무를 다하고 돌아 온 자신의 노예에게 주인이 무슨 특혜를 베풀어야만 하는가?”이며, 그에 대한 답은, 단연코, “아니오!”라 하겠다.누가복음 공부 – 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