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보훈 –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 헌법 (마태복음 5 -7 장 )
<주요 진리>
신약시대의 언약백성의 삶은 왕되신 예수님께 사랑으로 순종하며 따라 가는 삶입니다.
<마태복음 5:13-16>
1. 예수님께서는 “복된 상태”를 하나님 나라 시민들의 기본모습이라 하신다 (마태복음 5:2-12). 하나님 나라의 시민들로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사랑과 무조건적인 은혜로 이미 복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다. 제자들이 노력하여 복된 자리를 상으로 받은 게 아니라, 되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거저 주신 은혜이다. 천국팔복에서 밝혔듯이 하나님 나라의 시민들은 서로를 그리고 어둠에서 사는 이웃들을 이런 복된 자로서의 마음자세로 섬기고 살아야만 한다고 가르치신 것이다. 한 마디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시민들로서, 이 타락하고 어두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를 가르치신 것이다. 그리고 산상보훈의 나머지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를 구체적으로 밝히신 것이다.
2. 이사야선지가 밝혔듯이 이스라엘민족은 이방나라들의 빛으로서 존재했어야만 했다 (이사야 49:6).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사명을 실패한 나라가 되었다. 따라서 다시금 영적인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시려 오신 메시야, 즉 예수님께서 타락한 육적 이스라엘인들 가운데서 자신의 제자들을 부르신 것이다. 이 산상보훈은 이방인들 가운데서 빛으로 살아야만 하는 영적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갱신하는 지침이기도 하다.
3. 앞으로 도래할 자신의 나라에 대한 서론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애초에 가지셨던 이스라엘의 사명을 언급하신다. 아담과 그의 아내는 앞으로 태어날 자손들과 함께, 창조주로부터 존재의 사명을 부여 받았다. 온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었다 (창세기 1:28-30). 원죄 때문에 타락한 후로, 왜 자신들이 존재해야하는 지의 사명이 흐려지고, 변질되자, 노아의 홍수후에 다시금 이 사명이 노아와 그 후손들에게 갱신되었다 (창세기 9:1). 하나님깨서는 여전히 사람의 존재의 사명을 변함없이 가지고 계신다. “아브람”이 그 사명을 위해 선택되었고, 복된 사명을 약속으로 받았으며 (창세기 12:3), 그 후에 “많은 민족들의 아비”로 “아브라함”이라 그의 이름을 지어 부르셨다 (창세기 17:5). 그 후에 노예민족이 된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다시 부르셔 “거룩한 나라”로서, 이방인들 가운데서 “제사장들의 나라”로 존재토록 만드셨다 (출애굽기 19:6).
4. 온 세상의 민족들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변함없으시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노예민족 이스라엘을 약속대로 부르시고 “거룩한 나라”로 만드셨다 (출애굽기 19:6). 구약의 어둔 세상에서 이스라엘은 빛과 같은 하나님의 교회였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어둔 세상에서 모든 이방민족들에게 “빛”으로 존재해야만 했다 (이사야 49:6). 모든 이방민족들에게 빛으로서, 복으로서 이스라엘이 존재하는 사명을 부여 받은 것이다.
5. 예수님 당시에, 이 산상보훈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에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존재하는 사명을 상기시켜주신 것이다. 하지만, 온 이스라엘 민족이 타락하여 마치 이방인들처럼 되어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아래에 똑 같이 머물렀다고 사도 바울이 증거하였다 (로마서 2:17-21).
6.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세우실 자신의 나라의 핵심인물들로서 자신의 제자들을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 명명하신다. 앞으로 다가 올 메시야의 나라에서 타락한 이스라엘 민족 대신에 이 제자들이 그 자리를 메꾸실 것을 알리신 것이다. 즉 타락한 이스라엘과 세상을 향해 자신의 제자들이 “소금”과 “빛”으로 사는 존재의 사명을 가졌다고 밝히신다. 소금은 음식의 맛을 내게 하며, 부패를 방지하거나, 부패속도를 느리게 만든다. 그 역할을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에게서 보신 것이다. 하지만 타락한 세상은 제자들을 소금처럼 주요한 음식의 요소라 생각지 않는다. 되려 세상은 제자들을 가치없으며, 불필요하고 되려 세상에 해로운 존재로 여긴다 (마태복음 5:11-12).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과 소금은 주변의 존재들을 위해 있다. 소금 자체로는 우리가 먹고 즐기지 않지만, 음식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존재이며, 빛 또한 주변의 어둠을 밝혀 주기에 필요한 존재이지 빛 자체를 우리가 귀중한 것이라 보는 게 아니다. 따라서 빛과 소금은 타인들을 위해 존재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7. 그렇기에,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소금”으로서는 세상의 타락과 죄를 방지하고 대신 스스로를 희생해 주는, 그들의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제사장들은 타락한 주위를 위해 희생하며 살아야만 한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돌아 가시기 전에 타락한 죄인들의 무지한 만행을 용서해 주시길 기도하셨다 (누가복음 23:34). 소금은 그 맛을 잃을 수가 있다. 예수님께서 보시기엔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 역할을 잃어 버릴 때, 세상보다도 못한 존재들이 되고 세상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로 부터도 버림을 받아, 스스로 멸망할 수도 있음을 경고하신 것이다 (마태복음 5:13).
8. 제자들을 빛이라 부르실 때, 빛은 그 밝음을 잃지를 않는다. 예수님께서 그 빛이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과는 달리 제자들이 스스로의 존재에 촛점을 두거나 자신들을 주요하다고 강조하는 일이 없어야만 한다. 예수님외에는 제자들이 무슨 내적 존재의 가치를 지닌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어두운 세상에서 제자들은 단지 비추는 빛일 뿐이며, 그들이 비추는 빛은 참 빛이시요, 타락한 세상의 구원자되신 예수님께로 (요한복음 3:19-20) 어둠에 있는 사람들을 인도하는 단지 안내판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 어떠한 환경속에서도 빛은 스스로를 희미하게 하거나, 숨겨서는 안 된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가진 빛의 역할이 바로 “선지자”적임을 밝히신 것이다. 어두운 세상에 하나님의 아들을 알게 하여 영생을 얻도록 하는 선지자의 역할을 (요한복음 20:31) 위해서는 끊임없는 연료인 성령님의 계속 함께하여 주심이 제자들의 일상 삶에 너무나도 중요하다. 그리 할 때에 제자들은 참 빛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께로 어두움에 있는 사람들을 인도하는 안내판으로서의 빛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다.
9. 우리 메시야의 나라의 시민들인, 제자들은 타락한 세상을 위해 희생적인 사랑으로 (마태복음 5:2-12) 자신을 봉사하는 소금과 빛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