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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1: 9-18-2022. 마태복음 공부. 16.13-20. 36회
part2: 9-25-2022.마태복음 공부 16.13-20
마태복음 성경공부 – 제36회
4부. 16:13-23:39. 예수님의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는 투쟁
마태복음의 제 4부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소개한다. 시시리아 빌립보로 가시는 도중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대화를 이끌어 가신다. 베드로가 다른 사도들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시라고 공언할 때, 주님께서는 그들 앞에서 이 진리를 그대로 시인하신다. 자신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그리스도시라고 밝히 계시하신 출발점이 제 4부의 시작이다. 즉시로 예수님께서는 다가 올 자신의 고난과 죽으심에 대해 처음으로 사도들에게 밝히셨다. 따라서 제 4부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셔서 당하실 고난과 나무(십자가) 위에서 죽으실 사실들이 주요한 주제가 된다. 하지만 당분간 주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사도들과 만 제한적으로 공유하신다. 이러한 사실들은 이미 하나님께서 미리 계획하시고,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하신 대로 진행되는 과정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여정에서 무리들에게 계속하여 복음을 선포하시고 기적을 행하시면서 그들에게 회개하라고 꾸준히 반복하여 명령하신다.
1. 사도 베드로의 고백 (16:13 –20)
헤롯의 분봉왕 빌립이 세운 여름궁전 도시, 시시리아 빌비보는 갈릴리 바다의 북동쪽에 위치해 있다. 예수님께서는 요단강의 시작지점인 헤르몬 산쪽으로 제자들과 가시는 도중에 이 도시의 외곽에 이르셨다. 갈리리에서의 공사역을 마치시고 예수님께서 이제 잠시동안 제자들과 이곳으로 오셔서 장차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가장 중요한 사역을 준비하시려 했다. 헤롯대왕의 아들 중 분봉왕 빌립은 로마황제를 기리고, 그 이름 뒤에 자신의 이름을 덧붙힌 도시 시저–빌립보 (시시리아 빌립보)를 새롭게 단장하여 이방 우상숭배의 거점으로 삼았다. 예수님께서는 그 도시를 둘러 가서 헤르몬 산쪽으로 향하시려 작정하시고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셨다. 예수님 자신의 참된 실체, 즉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사도들에게 밝히셨다.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앞으로 당하실 고난과 십자가 상의 죽음을 증인들로서 제대로 목도하도록 대비하게 하신 것이다.
1) 무리가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제자들에게 물어 보셨다. 무리들이야 당연히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어떤 특별한 관계를 가지신 선지자로 알고 있다고 제자들이 대답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과 개성이 특이하신 점에 무리들이 적잖게 감명을 받았던 것이다. 물론 무리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 즉 메시야시라고 전혀 생각하지는 않았다.
2) 그들의 이같은 대답에 예수님께서는 다시금 질문을 하셨다,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이 질문 이야말로 이번 여정에서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사도들에게 주지시키시고자 하는 주제이다. 이 질문에 시몬 베드로가 곧바로 힘있게 강조를 확실하게 하며 답을 해 드렸다. 사도들도 이미 예수님을 선지자보다 더 위대하신 분이라고 여기었다 (마태복음 14:33).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위대한 선지자로서 행하시던 모든 기적들과 사역에서 더 나아가 이제는 자신의 진정한 실체를 사도들에게 밝히셔야 만 할 때가 온 것이다. 사도들이 이제는 예수님께서 그리스도 (메시야)이심을 분명히 인식할 때가 도래한 것이다. 이러한 계기를 만드시고자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시간을 위해 홀로 기도하시며 미리 준비해 두셨다 (누가복음 9:18).
3) 시몬 베드로의 고백은 확실하여 조그만 실수 조차 할 여지를 남겨 두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곧 메시야시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과 이스라엘이 가져 온 소망의 대상이 되신 바로 그 메시야시며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사랑하시며 심히 좋아하신다 (마태복음 12:18; 참조. 이사야 42:1).
4) 베드로의 답변에 예수님께서 그를 축복하셨다. 베드로가 그러한 대답을 할 정도의 통찰력이 뛰어 나서 주님의 칭찬과 복을 받은 것이 아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로 베드로가 영에 감동을 받아 예수님의 실체를 깨닫게 되었을 뿐이다. 아버지 하나님의 간섭이 없었다면 그저 사람에 불과한 베드로가 예수님의 참된 실체를 전혀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사역과 그분의 참된 실체를 사람이 스스로 알 수가 없다. 하나님의 계시가 베드로에게 임하셔서 그가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모든 기적들과 예수님께 들었던 말씀들을 이제서야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하심으로 베드로의 영적 눈이 열리고, 생각이 밝아져서 깨닫도록 해 주신 것이다.
5) 확신을 가지고 베드로가 분명히 그리 고백한 것은 곧 그의 앞으로 할 사역에 힘을 스스로에게 실어준다 하겠다. 그리스도께서 미래에 세우실 자신의 교회를 위해 베드로가 이처럼 확신에 찬 고백을 하도록 아버지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이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시몬을 만나서 그의 개성에 맞는 이름을 주셨다. “베드로”(돌멩이, petros)가 그 이름이다. 여기서 베드로가 중심에 있는 게 아니라, 그의 고백을 예수님께서 중시하시고, 페트라 (반석, petra)라고 부르셨다. 그렇지만 베드로 뿐만 아니라, 그를 위시하여 나머지 사도들 모두가 그 반석과 같은 확신에 찬 고백을 공유한 것이다. 따라서 그들 모두가 앞으로 예수님의 교회를 그 고백에 의거하여 세우게 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만이 유일한 자신의 교회의 건축가가 되시며, 사도들은 그 세워 질 교회의 기초들이 될 것이라고 선포하셨다.
6) “교회”란 단어를 예수님께서 신약시대에 자신의 세우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에게 만 적용하셨다. 복음서들 중에서 오직 마태복음에서만 단지 두 번 사용하셨을 뿐이다. 따라서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이 “회중”이라고 불렸는데, 그 회중을 신약시대에 예수님의 세우실 나라의 백성 즉 교회가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 알리신 것이다. 메시야로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이젠 “교회”라고 부르셨다.
7) “음부(지옥)의 대문들”이란 귀절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1) 구약의 “스올” (히브리어)이라는 단어는 희랍어 구약성경 (70인 역)에서 “하데스”라는 희랍어로 번역되었다.
(2) 구약성경의 “스올”은 문맥상 약 세 개의 다른 뜻이 있다:
(i) “악한 자들이 벌을 받는 장소” – “하나님의 진노가 불타오르는 곳”이며 죽어서 악한 자들만이 그곳으로 내려간다 (신명기 32:22; 시편 9:17; 55:15; 잠언 15:11 & 24).
(ii) “무덤” – 모든 (의로운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 죽은 자들의 육체가 내려 가는 곳이다 (창세기 44:29 & 31; 열왕기상 2:6 & 9).
(iii) “죽어 있는 상태” – 즉 “몸과 분리된 영의 처한 상태”를 마치 장소인 양 빗대어 사용하기도 했기에, 죽은 후 모든 사람들이 가는 마치 감옥과도 같은 곳처럼 비유하기도 했다 (사무엘상 2:6; 이사야 38:10).
(3) 신약성경의 “하데스” 또한 문맥상 세 개의 다른 뜻을 가진다:
(i) “지옥”- 고통을 당하고 불이 타오르는 곳” (누가복음 16:23-24; 마태복음 11:23; 누가복음 10:15; 마태복음 16:18).
(ii) “무덤” – 죽은 후에 모든 육체가 머무르는 곳 (사도행전 2:27 & 31).
(iii) “죽어 있는 상태” – 즉 “몸과 분리된 영이 처한 상태”를 마치 장소인 양 비유했다 (사도행전 2:27 & 31; 요한계시록 1:18). 마치 사람으로 비유하여 죽음 후에 죽음을 항상 따라 오는 사람처럼 빗대었고, 그도 결국에는 “불 호수”에 던져 진다 (사도행전 2:27 & 31; 요한계시록 6:8; 20:13-14).
따라서 지옥 혹은 죽음의 힘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결단코 이길 수가 없다고 예수님께서 선포하셨다. 예수님 자신이 죽음과 지옥의 권세를 이기시고 더 크시니 자신의 승리를 장차 세우실 교회와 공유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8)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권위를 베드로와 나머지 사도들에게 자신의 앞으로 세우실 교회를 위해 위임해 주셨다. 이 권위는 사도들이 장차 교회를 세우는 사역과 밀접하게 연관되었다. 하나님의 나라를 누구에게 열어 준다는 것은 그에게 죄 용서와 영생을 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즉 교회에 들어 가게끔 허락하신다는 뜻이다. 이제까지는 예수님 자신만이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가도록 이런 권위를 쓰셨다. 하지만, 장차 세우실 교회를 위해서 사도들에게 이 권위를 위임해 주신 것이다. 즉 사도들에게 장차 세우실 교회를 위하여 예수님의 주신 명령들을 “선포하며”, “가르치고”, “다스리는” 직분 (office)을 허락하신 것이다.
9) 사도들은 예수님의 주신 권위로 그분께 순종하여 그 직분을 수행해야만 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공표하면서 “심판을 선포”하기도 하고, “심판을 면하게 되었다”고 선포하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 하나님의 명령들을 풀어서 설명도 해야만 한다. 교회를 다스릴 때에 사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사람들에겐 “치리”로써 “심판을 공표”하기도 하고, 그들이 회개하여 돌아 설 때에 “그 심판을 이제 면하게 되었다”고 선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하나님 나라)에 다시 받아 들이게도 한다.
10) 유대인들이 기대하고 소망하는 메시야의 왕림이란,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이 도래함이었다. 민족주의적인 유대인들에게나, 미래지향적인 말세론적 유대인들 모두가 동일하게 그리 생각했다. 그들 중에 그 누구도 이사야 53장에서 묘사된 고난 받는 종이 오실 메시야시라는 해석을 받아 들이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그리스도이심을 고난과 죽음을 겪으시기 전에 드러내지 않으려 하셨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시기 전까지는 자신의 그리스도이심을 일부러 무리들로부터 숨기셨던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나라를 세우실 메시야 즉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시는 고귀한 사역과 명예를 자신이 누리시기를 부활하실 때까지 스스로 미루신 것이다. 이제 오직 자신의 사도들에게 만 이 비밀을 고난과 십자가 상의 죽음과 부활을 겪으시기 전에 미리 밝혀 주셨다. 그러 하기에 사도들은 비밀을 미리 알게 된 댓가로 그 분의 고난과 죽음에 동참하는 스스로 겸손 해야만 되는 사역을 감당하게 되었다.
생각할 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 살아 있는 지체들로서 우리가 사도들의 가르침이 교회 안에서 행해질 때 어떻게 이를 대해야 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