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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공부 – 9 (누가복음 11:5-13)
- 누가복음 11:5-8 (“한밤에 찾아 온 친구” 비유)
- 이야기에 대한 상세한 이해 (문화적, 사회적인 면)
우리가 가져야 할 기도하는 마음의 자세를 가르치시는 비유를 예수님께서는 질문으로 시작하시며, 그 시대에 이웃간의 삶에 비추어 볼 때, 비유를 듣는 무리 모두가 예수님의 질문에 부정적인 답을 당연히 할 것으로 잘 알고 계신다.
1) 예수님께서 하신 질문을 달리 풀어 본다면, “한밤중에 찾아 온 친구가 있어 이웃에게 가서 빵을 빌려 오려 할 때, 이웃이 그에게 ‘문이 이미 잠겼다’거나, ‘애들이 이미 잠들었다’고 하는 어이없는 답을 한다고 상상이라도 할 수 있을까?” 예수님의 이 비유를 듣고 있던 무리들은 당연히, “천만에요, 그런 답을 이웃이 한다는 것을 상상조차도 못하겠나이다!”라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2) 팔레스틴의 시골 마을에서는 어느 집에 찾아 온 손님을 융숭하게 접대하는 것이 마을 전체의 일이다. 그 손님이 떠날 때, 통상적으로 이런 식으로 말한다, “여러분들과 함께 제가 이 집에 머무는 동안 마을의 여러분들이 저에게 베풀어 주신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자연히 어느 집에 한 손님이 방문했더라도, 그 손님은 마을 전체의 손님으로 대접받는다. 당연히 마을 전체가 그 손님을 접대하는 데 나름대로 일조하는 것이 팔레스틴의 전통이다.
3) 이 비유에서, 팔레스틴 – 유대인의 시골의 한 집에 손님이 한밤중에 찾아 왔다. 사막들과 광야들이 많아 뜨거운 한낮을 피해 저녁에 여행을 자주하는 것이 중동의 다른 나라들에서는 일상이다. 하지만 팔레스틴 지방은 산들이 곳곳에 많이 있어, 한낮에 주로 여행을 한다. 따라서, 한밤중에 손님이 온 것은 아주 드문 경우에 해당한다.
4) 집주인이 손님을 맞으면, 제일 먼저 그에게 일단 식사를 대접한다. 손님을 음식으로 환대하는 것은 팔레스틴에서 아주 중요한 전통이다. 그리고 이러한 음식으로 하는 환대를 마을 전체가 일부나마 책임을 진다. 집주인은 먹다 남은 음식이 아니라, 새 음식을 손님에게 대접해야만 한다. 그리고 손님은 자신 앞에 차려진 음식을 싫어하든 좋아하든 반드시 먹어야만 한다.
5) 집주인이 주로 제일 먼저 대접하는 것은 아직 식탁에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던 빵이다. 빵은 그리 중요한 가치를 지닌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일 먼저 제공되는 음식이며 이 빵을 식탁에서 각자가 먹을 만큼의 양을 뜯어서, 공동그릇에 담긴 양념장에 찍어 먹는다. 당연히 각자가 자신이 한 번에 먹을 정도의 크기로 뜯어서 매번 그리 먹는다. 아무리 양념장이 없다 하더라도, 빵을 찍어 먹을 수 있는 양념이 분명히 있어야 하기에, 아주 가난한 집은, 일단 소금이라도 찍어 먹게 손님에게 내어 놓아야 한다.
6) 집주인은 이웃에게 가서 사용되지 않은 빵 덩어리를 빌리려 했다. 하지만 마을 사람 모두가 잘 안다. 집주인이 그저 빵 덩어리만 빌려서는 갑작스레 한밤중에 찾아 온 손님을 융숭하게 대접할 수 없다는 것을. 식사대접을 제대로 준비하려면 빵 덩어리 외에도 많은 자질구레한 것들이 필요하다. 비유의 끝부분에, 첫 번째 이웃이 빌리러 온 집주인에게 “다른 것들도”가져 가도록 했다는 것에서도 잘 드러 난다 (누가복음 11:8). 손님을 맞은 집주인은 첫 번째 이웃이 자신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왜냐하면
가) 집주인이 그 이웃에게 자신이 먹으려고 한밤중에 빵을 빌리러 간 게 아니다. 자신의 집에 찾아 온 손님을 대접하려 이웃에게 부탁하려 간 것이기 때문이다.
나) 집주인이 자신에게 한밤중에 찾아 온 손님을 잘 대접하려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다) 집주인이 이웃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으려 그저 빵덩어리만을 빌리려 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7) 집주인이 첫 번째 이웃집을 시작으로 다른 여러 이웃집에도 나중에 들러서 손님을 제대로 대접하기 위해 여러 종류의 물건들이나, 음식들을 빌려야 할 것을 그 첫 번째 이웃 또한 잘 알고 있다.
8) 잠들어 있던 이웃은 빌리러 온 친구가 문을 두드리지 않고 목소리로 불러 주어 최소한의 예의를 지켰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문도 잠겼고, 애들도 누워 자는 데 찾아 온 이웃이 답갑지만은 않았다. 그렇지만 아주 사소한 것인 빵 덩어리를 만약 빌려 주지 않는다면, 다른 이웃에게도 결국 들를 터인데, 그들에게 자신의 불친절하고 뻔뻔스런 행위를 소문 냈을 경우, 자신의 명예와 체면이 손상될 것임을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밤새 소문이 나 돌고, 다음 날 아침에 사소한 빵 덩어리 때문에 첫 번째 이웃은 자신의 체면도 명예도 망가져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첫 번째 이웃은 자신의 “체면과 명예가 손상되는 것을 방지”하려, 결국 집주인이 원하는 것들을 모두 빌려 주게 된 것이다.
- 신학적이며 실천적인 결론
1) 하나님의 속성: 우리의 여건이 어쩔 수 없어 우리에게 불친절한 이웃에게 부탁하러 갈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자: 한밤중이다. 이웃집 사람들은 모두 잠이 이미 들었다. 그 집 문은 잠겨 있다. 그 집 애들도 모두 자고 있다. 그 이웃 사람은 평소에도 우리에게 그리 친절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에게서 우리가 빌리려 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빌려 올 수 있었다. 어찌 이러한 일이 가능했을까? 우리의 불친절한 이웃은 우리를 방문한 손님 대접을 우리가 준비할 때, 마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신도 도와야 할 일정부분의 책임과 의무를 가졌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 이웃이 만약 거기에 걸맞게 우리에게 빌려 주지 않는다면, 자신의 명예와 체면이 다음 날 아침 즈음에 이미 손상되어 있을 수도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명예와 체통이 손상 당하게 방치하실 분이 전혀 아니시다. 게다가 우리를 무척이나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사실을 기도시에 각인하라!
2) 빌리러 간 사람/ 기도하는 사람의 확신: 우리에게 불친절한 이웃에게 가서 그로부터 분명히 우리의 필요한 것을 빌려 올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는데, 하물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께서 우리의 요구를 거절하실 수 전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