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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비유 성경공부 교재 – 20회. (누가복음 18:9-14)

October 28, 2022 By BoazPa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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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비유 성경공부 – 20회 (1)

누가복음 비유 성경공부-  20회 (2)

누가복음 공부 – 20

누가복음 공부 – 20 (누가복음 18:9-14)

 

누가복음 18:9-14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

 

1. 일반적이고 문화적인 배경 이해

 

1) 예수님의 이 비유에서 “의로움” 특히 “자기 의”를 누가는 강조한다. 하지만 바로 앞의 비유에서(누가복음 18:1-8) 언급된 “기도”가 여전히 중요한 주제이다. 따라서 주 예수님 그리스도께서 “기도하는 사람”과 그의 “기도”를 제자들이 심각하게 생각해 보도록 이 비유에서 제시하며 설명하신다.

 

 

2) 신약에서“기도하다”라는 동사가 주로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첫 번째로 개인이 하는 경건한 행위를 의미하며, 두 번째로 성전에서 무리가 제사라는 공동예배의식의 한 부분에 참예하는 행위를 뜻한다. 이 비유에서는, 기도하는 사람과 그가 하는 기도가 예루살렘 성전의 뜰에서 무리가 제사장을 중심으로 가지는 제사의식 (공동예배행위)의 일부분에 참예하는 행위를 뜻한다: 가) 두 사람이 성전으로 (무리가 공적으로 예배하는 곳), 희생제사 시간에 맞추어 동시에 올라갔다; 나) 두 사람이 동시에 성전에서 각자의 집으로 내려갔다 (제사, 즉 공적 예배의 행위가 끝났다는 것을 암시한다); 다) “성전”이 명시된 것은, 무리가 모여 공적으로 속죄의 희생제사에 참예하는 예배행위를 하는 장소를 뜻한다; 라) 바리새인이 “홀로 떨어져(aloof)” 섰다는 것은, 예배에 참예한 나머지 무리들이 있음을 뜻한다; 마) 세리가 “멀리 동떨어져 서서”라는 것은 그 사람 외에도 함께 제사의식 (공동 예배)에 참예하는 무리가 있음을 뜻한다.

 

 

3) 예수님 당시에 로마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의 성전이 무너지기 전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매일 아침 저녁으로 두 번에 걸쳐 속죄를 위해 드리는 희생제사 즉 공동 예배에 참예하기 위해 성전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매일 당일의 제사를 담당하는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 가서 향을 태울 때, 성전 뜰에서 각자 기도를 드리곤 했다 (누가복음 1:10). 그리고 제사의 마지막에 제사장이 모인 무리에게 축도를 함으로써 예배가 마무리 되었다: 가) 이른 아침에 어린 양을 속죄의 희생제물로 드리는 제사였다 (오전 6-9시). 그리고 오후에도 동일한 희생제사를 해가 질 무렵에 드렸다 (오후 3-6시, 출애굽기 28:38-41); 나) 양의 전체를 불로 태우고, 그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 가서 뿌리고, 유향을 금향단에 불태울 즈음에, 성전 뜰에 있던 무리들은 각자 기도를 드렸다. 이미 희생제사의 흘린 피를 통하여 자신들의 죄가 가려졌기 때문에 무리는 죄를 용서받은 상태에서 각자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이다.

 

4) 바리새인은 예배하러 서 있는 무리들에게서 “홀로 떨어져” 서 있었다. 자신은 의롭지만 나머지 무리들은 그러하지 않다고 마음 속으로 그들을 무시하고 그리 행동한 것이다.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려 한 바리새인들을 “하베림” (조력자들)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들은 나머지 유대인들을 “암–하아레츠”(땅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바리새인들은 특히 정결함과 부정함, 그리고 경작한 것의 소산으로 바치는 십일조에 관한 명령들을 매우 철저하게 지키려 하였다 (소제로서, 첫째 십일조, 둘째 십일조, 셋째, 즉 빈민들을 위한 십일조를 뜻한다). 바리새인의 눈으로 볼 때, 세리야 말로 전형적인 “암–하아레츠”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바리새인들은 특히 정결함을 유지하려고 부정함에 오염되지 않으려 부정한 사람이 앉았던 자리에 앉지 않았으며, 그가 사용한 나귀, 노새, 말, 혹은 낙타를 타지 않았고, 심지어 부정한 것의 근처에라도 기웃거리면 부정해 진다고 믿고 그러한 상황에 처하지 않으려 조심스레 행동하였다. 그리하여 성전 뜰에서 무리로 모여 예배할 때에, 무리와 특히 세리로부터 떨어져 홀로 서 있으려 한 것은 바리새인이 자연스레 취한 행동이었다.

 

 

5) 바리새인들은 평소에 하던 대로 큰 소리로 기도를 드렸다. 그 기도의 내용은 자신을 칭찬하고, 주변에서 성전의 희생제사, 즉 공동예배에 참예하던 나머지 무리들을, 특히 세리를 무시하는 것이었다. 담당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 가서 유향을 태울 즈음에 성전의 질서를 담당하던 집행관들은 모인 무리 가운데서 부정한 사람들을 가려 내서 동쪽 문 가까이에 서게 하였다.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전형적인 기도의 내용은 이러하다: 먼저 하나님께 자신이 받은 모든 선물들에 대하여 찬송과 감사를 드린 후, 자신의 필요한 소원들을 간구하였다. 그런데 이 비유에서 바리새인은 자신의 기도에 기도의 그 어느 요소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바리새인은 기도를 아예 하지 않았던 것이다. 전형적인 바리새인은 율법을 엄격하게 준수할 뿐만 아니라, 율법에서 요구한 것을 넘어서는 정도로 십일조를 바치는 것에 엄격하였다. 매년 작물과, 포도주와 기름에 한해서 십일조를 바치라고 율법은 요구했다 (레위기 27:30; 민수기 18:27; 신명기 12:17; 14:13). 그리고 율법은 대 속죄일에만 금식을 행하라고 요구하였다 (레위기 25:29; 민수기 39:7).

 

 

6) 회개하던 세리는 바리새인처럼 “홀로 떨어져”선 것이 아니라, 무리와 아예 “멀리 동 떨어져” 서 있었으니, 자신의 부정함과 무리에 섞일 자격 없음을 충분히 알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가지는 기도의 자세는 두 손을 가슴에 어긋나게 얹고 눈을 땅으로 향해 서 있는 모양새이다. 그런데 이 세리는 자신의 가슴을 계속하여 두 손으로 치는 자세로 회개기도를 하였다. 중근동의 남자들은 오늘날 까지도 극심한 번민을 할 때나, 격노할 때 두 손으로 빠르게 자신의 가슴을 친다. 하지만 구약에서는 그러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신약에서도 단지 두 곳에서, 즉 누가에서만 이 세리의 행동과 예수님께서 돌아 가셨을 때에 무리가 보인 이 특이한 행동을 기록하고 있다 (누가복음 23:48; 참조. 전도서 7:2; 예레미야 17:9; 마태복음 15:19). 따라서 세리의 이러한 행동은 그가 얼마나 자신의 죄에 대해 진심으로 온전히 후회하고 있음을 잘 드러낸다.

 

 

7) 세리는 전형적으로 하는 두리뭉실한 회개기도의 내용을 따르지 않았다. 자신의 죄가 완전히 깨끗하게 지워져서 하나님과 다시금 회복되게 해 달라고 부르짖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회개한 자신의 죄를 자비로 온전히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께로 관계를 다시금 회복시켜 주셔 달라고 부르짖었던 것이다. 그러한 의미를 신약에서 유일하게 가진 “동사”를 누가는 이 비유에서 사용했다. 우리는 그 외에도 신약에서 “죄를 깨끗하게 씻어 주고 하나님께로 관계를 회복시키다”라는 의미의 동사와 (히브리서 2:17) 명사가 단지 몇 군데에서만 (로마서 3:25; 히브리서 9:5; 요한일서 2:2; 4:10)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날 세리는 회개할 때에 자신을 제단 위에서 희생 당한 속죄물로서의 어린 양과 동일시 했던 것이다.

 

 

8) 예수님께서는 희생제사의 공적 예배가 모두 끝나고 “세리”를 먼저 언급하시며 성전에서 내려 갔다고 하셨다. 비유의 시작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을 먼저 언급하시며 성전으로 올라 갔다고 하셨다. 세리야 말로 회개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깨끗하게 용서받고,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을 받은 후에 집으로 돌아 갔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반면에 바리새인은 죄를 용서 받지도 못하고 (되려 그 죄 위에 다른 죄과를 자신에게 더하고) 집으로 돌아 갔다고 선언하셨다.

 

 

2. 신학적이며 실천적인 결론

 

1) 죄인이 의롭게 된다는 것은 속죄물의 희생만을 통하여 죄인이 자신의 죄들을 고백하고 스스로는 의롭게 될 수 없음을 인지하고 고백하는 회개기도를 할 때에 그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2) 속죄하는 희생제사가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아무 쓸모가 없다.

 

 

3) 모든 기도에는 일정한 내용이 있다. 그런데 자신을 칭찬한다거나, 거룩한 일을 성취했다고 자랑하거나, 동료 언약백성들을 깎아 내리고 비난하는 것들은 기도의 주제로나 내용으로도 합당하지 않다.

 

 

4) 죄들을 겸손히 고백하고, 속죄의 희생제물로 죄가 말끔히 씻기어 지고 자신의 필요한 것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기를 믿음으로 소망하는 고백이 기도의 내용이요 주제들이라 하겠다.

 

 

5) 기도를 하는 사람의 올바른 마음의 자세가 잘 드러났다. 교만은 기도하는 사람이 가지는 마음의 자세가 아니다. 겸손이야 말로 기도 시에 기도자의 마음에 필요하고 요구되는 자세이다.

 

 

6) 율법이 명한 모든 요구들을 온전히 지키며 심지어 율법의 요구보다 더한 정도까지를 지킨다 하더라도 죄 씻음과 관계의 회복이라는 의로움을 확실히 얻게 된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7) 자신의 의로움을 주창하다 보면 영적 눈으로 보는 것들이 뒤틀리고 흐려지게 된다. 자신의 죄들을 직시하고 인정한 후에 진심에서 우러나, 그를 통렬하게 회개하는 세리의 극적이고 생생한 모습이 자기 의로 가득한 바리새인의 눈 앞에 펼쳐졌다. 하지만 바리새인은 모든 수단을 다 써서라도 눈 앞의 부정한 세리를 피하고 멀리 해야만 자신의 정결함과 그에 따른 의로움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리 행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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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누가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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