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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공부 – 12 (누가복음 9:57-62)
누가복음 9:57-62 (참 제자의 길)
1. 예수님과 제자후보들과의 대화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
1)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르겠다는 사람들과 또 자신을 따르라고 명령한 사람과의 대화에서 유일무이한 메시야되심을 적확히 드러 내셨다. 그들과의 대화에서 단순명료하게 뜻을 전달 하시려고 짧은 비유를 세 번에 걸쳐 쓰셨다.
2) 예수님께서는 자원하여 자신을 따르려던 한 제자후보에게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일로서, 고통을 반드시 수반하는 제자의 길임을 비유로 적나라하게 밝혀 주셨다. 그리하여 그가 스스로 생각해 보고 자신이 이미 내린 결정이 성급한 것이 아니었는지를 점검해 보도록 권하셨다.
3)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던 당시의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 로마제국의 속국으로서, 제국의 대리인들인 이방인피가 흐르는 헤롯왕가가 다스리던 상황을 비유에서 반영하셨다. “여우”는 헤롯왕들을 의미하며, “새들”은 유대인들 속에 거주하는 로마제국의 영향력있는 이방인들을 의미한다. 다른 비유에서처럼, 이 비유를 듣고 그 후보가 어떤 결정을 내린 것인지를 기자 마태는 유보하고 있다.
4) 이제 예수님께서는 다른 한 사람을 부르셔서 자신을 따르라고 직접 명하셨다. 명령을 받은 제자후보는 마음속에 결정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그 당시의 사회관습이 그에게는 최종적인 권위를 행사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그 당시에, 나이 드신 어르신이 가족 외의 젊은 사람에게, 나중에 “나를 장사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그 두 사람 사이가 예사롭지 않은 깊은 관계임을 잘 드러 낸다. 즉 나이 드신 분이 젊은 사람에게 많은 사랑과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 부탁을 받은 사람은 그 부탁을 우선적으로 지키려 그분 가까이서 그 친밀한 관계를 계속 유지하면서 임종하실 경우에 장사 치르는 책임을 이행하는 것이 당연시 되는 사회관습이었다.
5) 하물며, 집안에 연로하신 부모님께서 살아 계실 때, 그 아들이 부모님의 임종을 지켜보고 장사 치르는 것을 삶에서 최우선시 하는 의무로 여기는 것은 아주 당연한 관습이었다. 따라서, 그 아들은 부모님의 임종과 장사 치르는 의무를 감당한 후에야, 다른 일에 전념하는 것이 당연시 되었다. 그러한 사회관습이 가장 중요하기에 랍비 예수님의 “나를 따르라”는 명령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일 수 없다는 것이 이 제자후보의 결정이었다. 그는 예수님께서도 자기와 같은 생각을 당연히 가지고 계신다고 믿고 있었기에, 그러한 대답을 자연스레 예수님께 했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단호히, 자신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제자후보에게는 사회관습이나 가족간의 당연시 되는 의무보다 더 우선적으로 이행해야 할 의무임을 각인 시키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다시 명령하셨다.
6) 세번째 제자후보도 자원하여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기 전에 가족에게 작별인사를 한다는 조건을 먼저 내세웠다. 예수님과 다른 청중들도 그 제자후보가 자신의 부모에게 예를 차려 작별 인사를 하는 게 아니라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 제자후보는 자신의 아버지께서 먼저 허락하셔야만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밝혔던 것이다. 즉 그에게는 아버지의 권위가 최고의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작금의 대한민국에서는 많이 느슨해 졌지만, 오늘날까지도 중근동에서는 여전히 아버지의 권위가 거의 절대적이다. 따라서, 성혼하고 가정을 가진 아들이 다른 지방에 산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근황은 물론이요, 장래 있을 여행계획을 고향의 아버지께 일일이, 심지어는 직접 찾아 뵙고 보고 드리는 것이 당연시 되고 있다. 예수님 당시에는 아버지의 권위가 오늘날 보다 훨씬 더 엄중했으니 아버지의 권위에 순종하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그 권위에 순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이 제자후보는 생각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그리 생각하시리라고 이 제자후보는 의심하지 않았기에 자연스레 예수님께 그러한 말씀을 드렸던 것이다.
7) 예수님께서는 밭에서 쟁기를 잡고 밭일을 하는 것이 아주 집중을 요구하며, 자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농부가 정확하게 쟁기를 사용해야 함을 모두가 알고 있다 전제하시고 비유로 그에게 대답하셨다. 그리고 집중을 요구하는 밭일과 같이 하나님 나라의 일이 곧 예수님의 제자로 그분을 따르는, 즉 집중을 요구하는 일이라고 비유로 설명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밭에서 농부가 아주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여 쟁기를 사용하여 밭일을 해야 하듯이, 하나님 나라의 일도 그러한 집중과 노력을 최우선으로 요구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는 것이 곧 예수님의 권위를 따르는 것이며, 예수님의 권위가 제자후보의 아버지가 가진 권위보다 더 중요하기에 예수님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라고 명하셨다.
2. 신학적이며 실천적인 결론
1) “인자/사람의 아들”이 사는 길은 결단코 승리의 길이 아니라, 슬픔과 거절당함과 멸시를 당하는 길이다. 랍비 예수님을 따라 이러한 길을 걸어 갈 것인가라고 모든 제자후보들에게 자문케 하신다. 제자의 삶이 치러야 할 희생을 뚜렷하게 밝히셨다.
2) 우리가 알다시피, 자신의 모든 원하는 바와 뜻이 예수님의 원하시는 바와 뜻으로 대체되는 일, 즉 “자기를 부인함”이 선결되지 않고는 예수님의 제자학교에 아예 입학이 불가능하다. “자기부인”이 입학 후에 시행되어야 할 과제가 아니다. 입학 후에는 이미 이루어진 “자기부인”을 매일 점검해 보아야 할 뿐이다 (누가복음 9:23; 14:27; 마태복음 10:38; 16:24).
3) 예수님께서 세우시는 하나님 나라에서 사는 일은, 제자의 삶이며, 이 세상의 모든 권위와 문화와 사회관습보다 더 중요한 권위를 가지며, 그에 걸맞는 충성을 요구한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권위만을 최우선으로 중시하길 명하신다.
4)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제자의 삶을 사는 것이요, 예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는 것이기에, 예수님의 뒤를 따라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기도 하다.
5) 결국 제자는 자원하여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반드시 먼저 부르시고, 그 부르심에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순종하여만 만들어 진다.
6) 제자의 길로서, 하나님 나라의 일은 모든 제자들에게서 일편단심을 요구하신다. 그 일을 나뉘어진 마음으로 수행할 수 결단코 없다. 하늘 아버지의 대리자요 사도이신 예수님께 일편단심으로 순종함이 하늘의 아버지께 동일하게 순종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