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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재-
성경에 계시된 은혜의 언약 – 2
(The Covenant of Grace Revealed in the Scriptures)
- 언약의 중요성 (The Importance of the Covenant of Grace)
1) 19세기말과 20세기의 중순까지 미국의 많은 도시들에서 일어 났던 천막부흥회는 15-16세기의 재세례파에서 유행하였던 개인주의, 주관중심주의, 그리고 감성중심주의를 다시 부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2) 이러한 주의들의 흥왕은 자연히 16세기 종교개혁이후로 복원된 성경에 근거한 언약에 대한 경시사상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경시사상은 15-16세기의 재세례파와 다르지 않다.
3) 개인의 중생체험에 의거하여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믿음만이 강조되었다. 따라서 이런 현상은 재세례파들이 15-16세기에 강조하던 점과 동일한 현상이었다. 즉 중생의 구첵적인 체험과 확신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확실히 고백하지 않으면, 개인의 구원을 인정하지 않는 현상이다. 따라서, 물속에 침수하여 행하는 침례만이 올바른 세례예식이며, 입으로 자신의 중생체험을 고백한 이성의 분별력을 가진 성인 고백자들에 한해서만 세례를 베풀어, 세례라는 의식에서 “침례”만이 참되며, “중생의 체험과 구체적 증거의 고백”만이 세례의식의 유일 조건이 되었다.
4) 이러한 현상을 드러 낸 교회들에서는 안타깝게도, 성경에 자세히 기록된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찾아 온 야훼의 일방적 은혜의 언약개념이 등한시 되거나, 아예 무시되어 버렸다. 그들은 주관주의, 감성주의, 그리고 체험주의의 입장에서 받아 들일 수 없는 “은혜의 언약”을 종교개혁자들의 창작품이라 단정해 버렸다. 따라서 그들은 성경을 따른다 하면서도, 성경의 핵심을 비껴가는 오류를 지금까지도 범하고 있다.
5) 이러한 현상이쉽게 교회 안에서 흥왕하던 이유는, 그들의 성경해석이 올바르다고 가르치며 그 가름침을 그대로 받아 들이는 세대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들의 대표적으로 문맥을 벗어 난 그릇된 해석은 이러하다. 신약성경 곳곳에 나오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두 동일하게 믿음으로 구원을 은혜로 받았다”는 귀절을, “유대인이나, 헬라인들이 급작스런 중생체험을 은혜 안에서 믿음으로 한 점에서 동일하다”고 해석하는 오류를 범했다. 아브라함에게 그의 할례 전에 야훼의 약속에 대한 믿음으로만 은혜로 칭의를 허락한 언약의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 오류를 저지른 것이다. (창세기 15:6)
6)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창세기 12장 3절의 말씀 또한 그 성취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이방민족에게 아직도 이루어 지고 있는데, 야훼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약속대로 구원하신다는 언약개념 또한 무시된다.
7) 더욱 안타까운 것은, 개혁교회들 조차도 “은혜의 언약”을 성경에 근거하여 철저하게 가르치지도, 실행하지도 않아, 그러한 교회들의 젊은 세대들이 전통이나 형식에 의거하여, 자신의 유아들에게 “유아세례”를 참된 언약에 의거하여 야훼의 언약에서 요구하는 명령에 순종하는 개념없이 행하는 현상이 점점 늘어 나고 있다.
8) 지금에라도 다시금 성경에서 너무나도 확연하게 가르치고 있는 “은혜의 언약”이라는 성경의 핵심사상으로 돌아 가서, 그 언약의 하나님께 믿음으로 순종하는 신앙생활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