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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2022. 누가복음 18.1-8 비유성경공부.19-1부.
누가복음 공부 – 19-1부 (누가복음 18:1-8)
누가복음 18:1-8 (재판장과 과부의 비유)
1.일반적이고 문화적인 배경 이해
1) 재판장이 자신의 인생관에 대해 스스로 내린 평가를 중동지방의 문화적인 관점에서 더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중동의 문화에서는 체면과 수치감이 주요한 요소이다. 그 사회가 구성원들에게 수치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어떠한 유형의 행동을 하도록 강권한다.
2) 재판장은 스스로 평가하기를 자신은 무엇이 떳떳하며, 무엇이 수치를 당하는 행동이라는 사회적 통념에 전혀 무관심하다고 말한다. 수치를 아예 느끼지 않는 사람이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당시 유대인들에게서 동일한 문제를 보았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수치를 당치 않으리라”(예레미야 8:9). 하지만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 “가증한 짓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 하였느냐? 아니라, 그들은 전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였으며, 그들의 얼굴이 붉어지지도 아니하였도다”(예레미야 8:12). 이 재판장이 가지고 있는 문제와 동일한 점을 예레미야 선지자는 당시에 선지자들과 제사장들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재판장은 무엇을 하든 자신이 수치를 느끼지 아니한다. 그의 영혼에 아예 명예나 체면을 중시하려는 생각 자체가 없다. 그러니 수치감을 그에게 불러 일으키려 사람들이 그를 자극할 수 조차도 불가능하다.
3) 이 재판장은 존경받을 만한 사람들을 존경하는 것을 하지 않는 그런 인격을 가진 것이 아니다. 타인들이 그에게 수치심을 유발시켜 그의 행동을 수정하도록 자극을 준다 할지라도 특이하게 그들에게 아예 무관심을 보인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악하다는 것을 전혀 인식조차도 아니하는 뻔뻔함을 갖고 있는 것이다. 몰염치한 사람이다. 자신이 가진 이런 성향이 그릇된 성품이라고 생각을 아니 한다.
4) 이 비유에서 재판장은 가난한 과부를 아주 힘들게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그러한 행동에 수치를 전혀 느끼지도 않는다. 온 세계 사람이 자신에게 손가락으로 “부끄러워할 줄을 알라!”고 비난한다 하더라도, 그는 전혀 수치를 느끼지 않기에, 어느 누구도 그의 수치심을 자극하는 것으로는 그에게 아무 영향을 끼칠 수 없다.
5) 누가복음 20장 13절에서 나오는 “뻔뻔한 소작인들”에게서도 우리는 동일한 문제를 본다. 소작인들은 포도원의 주인에게 서로가 계약해 둔 양의 수확한 과실들을 바치기를 거부한다. 이 소작인들은 주인이 보낸 사람들을 되려 부끄럽게 만들어 버린다. 마침내 주인은 “내가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낸다면, 그들이 그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리라”고 말을 한다. 주인은 아들을 보낼 때, 소작인들이 그를 존종해 주기를 바란 것이 아니다. 단지 소작인들이 아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껴 예전에 약정한 대로 바치기를 거절한 행위를 뉘우치고 돌이킬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막상 그들은 아예 수치심을 가지지 조차도 않았던 것이다.
6) 따라서 누가복음 18장의 이 비유에서 우리는 아주 상대하기 힘든 사람을 보는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이다. 무엇이 올바른 일이며, 무엇이 부끄러운 것인지를 아예 생각조차도 안하는 사람이다. 이런 재판장의 행위를 변하여 움직이게 하는 것은 그에게 뇌물을 주는 것 외에는 없다 하겠다. 이처럼 상대하기 힘든 재판장에게 과부가 찾아 온 것이다. 구약시대에서 과부는 죄짓지 도 않고 무력하며 아예 억압을 받는 사람의 전형이었다 (출애굽기 22:22-23; 신명기 10:18, 24:17, 27:19; 욥기 22:9, 24:3, 21; 이사야 10:2). 이사야 1장 17절은 관원들과 백성들에게 “과부를 위해 (변호)신원하라”고 명하셨다. 그런데 막상 23절에서 말하기는 “모두가 뇌물을(선물) 사랑하며…과부의 사정이 그들에게 오지 못하게 하는도다”라고 그 당시의 실상을 밝혔다.
7) 과부가 부르짓는 것은 정의와 보호를 요구하는 것이다. 복수를 해 달라고 호소하는 것이 아니다. 약 4개의 경우를 짐작해 볼 수 있다:
(1) 과부가 떳떳하고 옳은 편에 있다.
(2) 무슨 연유에서인지 재판장은 과부의 경우를 다루지도 않고, 그녀의 사정을 아예 들어 보려 하지도 않는다.
(3) 여인들이 법정에 등장하는 경우는 극히 예외적인 것이다. 그런데 이 과부는 자신을 대변해 줄 남자가 가까운 일가에도 먼 친척에서 조차도 없기에 본인이 공개 법정에 까지 직접 나와야만 했다.
(4) 재판장 또한 과부보다는 그녀의 상대를 더 선호하고 있었다.
8) 중동은 주로 남자들의 세계라 하겠다. 거기서 여인들은 권력도 힘도 없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여인들이 집안에만 머물며 사회적으로 공개적인 활동을 하거나, 공개적인 장소에 잘 나서지도 않는다. 하지만 여인들이 존중을 받고, 그들을 공개석상에서 소홀히 대하지 않는다. 반면에 남자들은 공개적으로 처벌을 받거나 모욕을 당하는 일이 빈번하다. 그렇기에 가끔 공개적인 자리에서 여인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고위직 관원에게 부르짖으며 직접 호소하기도 한다. 그래도 그러한 행위가 용인되며 그렇게 과감한 여인들의 발언을 여인들이기에 관원들이 간과해 준다. 만약 남자들이 공개적으로 고위 관원에게 그러한 언행을 한다면, 그 당사자들은 결단코 무사하지 않았을 것이다.